[뉴스] 필리핀서 한인 범죄·사고 피해 3000명… 정부 ‘뒷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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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년간 필리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한 범죄를 비롯해 각종 사건·사고의 한인 피해자가 3000명을 훌쩍 넘어섰지만 한국과 필리핀 정부 간 체결된 안전 관련 협약은 전무한 것으로 파악됐다. 필리핀 경찰이 피의자로 연루된 8년 전 한인 사업가 살해 사건도 필리핀 측으로부터 배상을 받아내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2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김영배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외교부와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우리 국민 3181명이 필리핀 현지에서 살인과 강도 등의 피해를 봤다. 아시아·태평양 지역 한국인 사건·사고 피해 통계에서 중국(6054명), 일본(3621명) 다음으로 많은 수준이다. 그러나 정부는 필리핀 정부와 재외국민보호 협약 관련 합의 등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현재 각국 재외 공관에 소속된 해외 경찰주재관은 33개국(52개 공관)에 61명이 파견돼 있다. 필리핀은 마닐라 한국대사관(2명)과 세부 분관(1명)에 총 3명이 근무하고 있다. 마닐라와 앙헬레스, 세부 등 3곳에서는 한국인 대상 강력 범죄 등을 전담해 처리하는 ‘코리안데스크’도 운영되고 있다. 이들은 필리핀 경찰청 산하 권역별 광역수사단(CIDG) 내에서 일한다.
필리핀에서 우리 국민이 피해자가 된 대표적 강력 범죄로는 ‘한인 사업가 지익주(당시 53세)씨 피살사건’이 있다. 지씨는 2016년 10월 필리핀 전현직 경찰 등에 의해 자택에서 납치된 후 살해당했다. 2심까지 거친 결과 올해 7월 피의자 3명이 무기징역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주범인 전직 필리핀 경찰청 마약단속국 팀장 라파엘 둠라오가 종신형을 선고받고 형 집행 전 도주하면서 행방이 묘연하다.
이 사건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필리핀 대통령이 재임 당시 주도한 ‘마약과의 전쟁’ 중 6000명 이상이 재판을 거치지 않고 숨진 초사법적 살인(Extrajudicial Killings)이 자행된 시기에 발생했다. 두테르테 전 대통령은 반인륜 범죄 등의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수사를 받고 있지만, 필리핀 정부는 2019년 3월 ICC를 탈퇴하며 수사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 지씨 사건에 대해 한국 정부는 필리핀 측으로부터 배상을 받은 바 없이 “필요한 영사 조력을 제공하겠다” 정도의 방침을 유지하고 있어 대응이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외통위 소속 한정애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외교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필리핀 사법 시스템을 존중하며 필리핀 측에 신속한 사법절차 집행을 지속 요청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한 의원은 이에 대해 필리핀 마닐라에서 발생한 ‘홍콩 관광객 인질극 참사’ 사건 이후 홍콩·중국 정부의 대응과 비교된다고 지적했다. 2010년 8월 사건 발생 당시 홍콩 정부는 필리핀에 대한 흑색 여행경보를 발령하고, 필리핀 외교관과 공무원 여권 소지자에 대한 비자 면제 조치를 중단하는 등 강력한 조치에 나섰다. 중국 리커창 당시 총리는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외교 문제로 가져가겠다고 엄중히 경고했다. 결국 필리핀 정부는 한발 물러서 양국 정부에 정식 사과하고 관광객 안전 조치를 마련했다. 유족에게도 총 258만달러(약 35억원)를 배상했다.
대통령실 등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시간) 필리핀 수도 마닐라를 국빈 방문해 개최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과의 ‘한·필리핀 정상회담’에서 지씨 납치 살해 사건 주범에 대한 형 집행을 위한 공조를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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